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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인터뷰] 한 컷 그림이 숨가쁜 삶에 작은 쉼표 됐으면… 09.11.04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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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 컷 그림이 숨가쁜 삶에 작은 쉼표 됐으면…
직접 그린 ‘그림 메일’서비스 이진한씨
시사만화가 출신… 신문사 그만둔 뒤 목재사업가 변신
고객 서비스로 시작, 1년 만에 고정팬 1000명 넘어 밑동이 넓은 아름드리 나무가 한 그루 있다. 올라가기 쉽도록 긴 계단이 놓인, 넉넉한 그늘을 드리운 나무다. 계단 끝 목 좋은 곳엔 한 사내가 둥지마냥 집을 짓고 들어앉았다. 먹음직한 술상 차려놓고 싸리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나무 아래 저만치 또 한 사내가 눈에 띈다. 찰랑거리는 술 한 병 받아들고 나무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중이다. 벗과 한잔 기울일 생각에 입가엔 벌써 미소가 번진다.

지난해 7월 어느 날 ‘마음의 창문’이란 제목의 카툰 한 편이 200여명의 이메일로 배달됐다. 엽서 아래쪽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마음을 열면 덕이 들어옵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마음의 창문을 여는 당신이길 바랍니다.” 엽서를 띄운 이는 ‘초이동 나무꾼’이란 필명을 쓰는 이진한(49)씨였다. 이씨는 이날 메일 수신자들에게 “환경, 자연, 나무를 소재로 하는 카툰 ‘나무꾼의 숲속편지’를 매주 띄우겠다”고 공언한 후 1년째 그 약속을 지켜오고 있다.

이진한씨는 목재상이다. 경기 하남시에서 ‘깔리아(www.kaliawood.com)’란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고급 원목을 수입해 마루를 주문제작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불과 3년 전만 해도 그의 직장은 신문사였다. 대학(계명대 서양화과) 4학년 때였던 1984년 경향신문에 입사, 편집국 미술팀에서 12년을 근무했다. 1996년엔 조선일보 시사만화가 공모에 뽑혀 회사를 옮긴 후 2006년까지 일했다.



▲ photo 이구희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22년의 샐러리맨 생활을 접고 사회에 나와보니 막막했다. 주변 지인들은 ‘다만 몇 년이라도 좋으니 다른 직장을 알아보라’고 권유했다. 그의 마음을 붙잡은 건 부산에서 종합목재회사를 운영하던 수십 년 지기 고향 친구였다. “매년 여름 휴가지로 부산을 정해 찾아갈 만큼 의지하던 친구였어요. 내려갈 때마다 공장 부지 한쪽에 작업공간 만들어줄 테니 회사 그만두면 와서 그림도 그리고 가구도 만들라며 설득하곤 했지요.”

천직으로 알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힘들어하던 그에게 친구는 ‘조건부 동업’을 제안했다. 부산 공장과 별도로 서울에 회사를 차리되 사업 운영 노하우는 자신이 전부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일단 원목마루 한 종류로 시작해 기반을 닦은 후 디자인 가구 등으로 사업 아이템을 확장하면 위험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게 친구의 설명이었다. 오랫동안 고심하던 그는 결국 일을 냈다. 3개월의 준비 끝에 2008년 5월 지금의 하남시 초이동 자리에 창고 겸 사무실을 연 것.

‘나무꾼의 숲속편지’ 아이디어는 사업가로의 변신을 결심하기 훨씬 이전에 떠올린 것이었다. “언젠가 인테리어 관련 일을 하게 되면 고객 특별서비스로 집 분위기에 맞는 그림을 하나씩 그려서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무꾼의 숲속편지’는 그 연장선상에서 태어났지요. 다만 제가 이쪽 일을 시작했으니 업계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소재를 활용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무꾼의 숲속편지’란 이름이나 ‘초이동 나무꾼’이란 필명은 그 결과인 셈이지요.”

‘고도원의 아침편지’나 ‘행복한 경영이야기’ 같은 메일링 서비스가 입소문 하나로 수많은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는 점도 그에게 용기를 북돋웠다. 단순히 글만 제공되는 다른 서비스들과 달리 그에겐 ‘그림’이란 경쟁력이 있었다. 기왕 시작한 일 제대로 해보자 싶어 ‘매주 월요일 새벽 배달’이란 원칙도 정했다. 그림에 곁들이는 문구는 ‘감명 깊은 글만 읽으면 밑줄 긋고 메모했던’ 오래된 습관 덕을 톡톡히 봤다.



첫 번째 고객은 일하면서 알게 된 업계 쪽 사람들, 매장을 방문해 명함을 놓고 간 이들이었다. 반응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첫날 메일을 보내자마자 전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잘 모르는 사람에게 받은 메일이 낯설었는지 대뜸 ‘당신 뭐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에서부터 ‘덕분에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했다’는 인사, ‘내용이 너무 좋아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했다’는 생색 아닌 생색에 이르기까지 내용도 다양했지요. 어제도 어떤 분이 대구 출장길에 메일을 받았다며 감사 전화를 해왔어요.”

회가 거듭되면서 ‘골수팬’도 생겨났다. 어떤 이는 매주 메일을 받자마자 전화로, 메일로 감사인사를 전해온다. ‘인사치레’는 지금껏 한 주도 빠짐없이 이어지고 있다. 홍보수단은 따로 없다. 메일을 받은 이가 새로운 수신자를 추천할 수 있는 기능이 유일하다. 그런데도 (목재업계란) 특수계층 독자로 출발한 이 서비스의 가족은 1년 만에 1000명을 넘어섰다. 얼마 전부턴 ‘업계 1등 매체’인 한국목재신문에도 그의 카툰이 연재되고 있다. 입소문을 전해 들은 신문 편집자가 그를 정식으로 섭외한 결과다.

‘나무꾼의 숲속편지’는 정치성을 완전히 배제했다. 어떤 날은 풍경(風磬)이, 어떤 날은 밭이랑이, 또 어떤 날은 솔잎이 그림의 주인공이다. 특징이 있다면 남다른 애주가인 그의 성향을 반영, 술(잔)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 정도. 매일 치열한 뉴스의 현장에서 시사만화를 그려온 그로선 의외의 선택이다. “신문사에 있을 땐 그쪽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여기 와보니 안 그래요. 의외로 정치색 드러내는 것에 거부감 가지는 사람이 많더군요. 그래서 의도적으로라도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재는 피하고 있습니다.”

이씨가 카툰 아이디어를 얻는 곳은 출퇴근 지하철 안이다. “집이 있는 행당역에서부터 사무실 인근 둔촌역까지 5호선을 타고 오가면서 다음 주 주제를 뭘로 할까 고민합니다. 눈을 감고 가만히 떠올리다 보면 희한하게 재료가 떠올라요. 제 그림은 전부 산과 숲, 강 같은 자연이 소재잖아요. 매주 산에 오르지 않아도 산 하나 탄다는 마음으로 임하니 그렇게 즐거울 수 없어요. 메일을 받아보는 분들도 그래서 좋아해주시지 않나 싶습니다.”



그는 여전히 직장생활에서 못다 이룬 꿈에 대한 미련이 있다. “시사만화가로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활용하기 위해 틈틈이 야간대학원(세종대 영상애니메이션학과)도 다녔어요.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제대로 못 살리고 회사를 그만둔 건 무척 아쉽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꿈은 번지수를 달리해 새로 싹트기 시작했다. 깔리아를 잘 키워 디자인가구 디자이너를 겸한 목재사업가가 되는 것이다.

“아직 멀었어요. 아직은 좀 더 많이 투자해 사업의 덩치를 키워야 할 때지요.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면 앞으로도 3년쯤은 고생해야 합니다. 각오도 돼 있어요. 지난해 지지부진했던 영업조직을 정비해 조만간 새로운 직원으로 진용을 짤 계획입니다. 원목마루는 건축자재 중에서도 최고급 분야여서 시장 자체가 크진 않지만 아직 대기업의 손이 미치지 않은 만큼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빌딩숲 광화문에서 공기 좋은 시 외곽으로, 서류더미 가득한 콘크리트 건물에서 에어컨 없이도 시원한 통나무집으로, 일개 샐러리맨에서 어엿한 중소기업 사장으로 몇 년 새 이씨의 인생은 상당히 달라졌다. 요즘 그는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사무실을 지키며 고객을 맞는다. 수입원목 수량을 정하거나 직원들과 영업실적을 놓고 회의하는 게 주요 일과다. 짬이 날 땐 자투리 원목으로 의자며 탁자 등을 ‘습작’하기도 한다. 아, 물론 매주 업데이트되는 ‘나무꾼의 숲속편지’ 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꼭 그의 업체에서 마루를 주문하지 않아도 ‘나무꾼의 숲속편지’를 받아볼 수 있다. 회사 홈페이지나 이씨의 이메일(kalia777@naver.com)로 신청하면 된다. 홈페이지 내 ‘커뮤니티’로 접속하면 이제까지 연재된 카툰들을 둘러볼 수도 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아직 그쪽은 미처 공부하지 못해” 블로그 서비스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요청하시는 분들이 많아 블로그도 조만간 개설하려고요. 그러려면 당장 그쪽 공부부터 시작해야 할 판이에요.” (웃음)


/ 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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